200년 전, 영국 노팅엄의 직조공들이 밤을 틈타 공장으로 숨어들었다. 망치를 들고, 분노를 안고, 자신들의 밥줄을 빼앗은 기계를 부수러.
역사는 그들을 ‘러다이트’라 불렀다. 교과서에는 ‘기계의 발전을 막으려 한 자들’로 실려 있다. 하지만 그건 기계를 만든 쪽의 기록이다.
그런데 나는 가끔 생각한다. 적어도 그들은 적이 누군지 알았다. 부술 대상이 있었다. 망치를 휘두르면 무언가가 깨졌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부술 수 없는 적
IT 업계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요즘 듣는 말이 있다.
“AI면 다 되는 거 아냐?”
이 말을 들을 때마다 1820년대 직조공의 감정이 이해된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차이는, 그들은 기계에 망치를 휘둘렀지만 나는 휘두를 곳조차 없다는 것이다.
내 적은 코드 안에 있다. 클라우드 위에 있다. 누군가의 API 호출 뒤에 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부숴야 하나.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본질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 분노의 방향을 찾을 수 없는 무력함.
“AI면 다 된다"는 오만
물론 AI는 강력하다. 나도 매일 쓴다. 일을 돕고, 생각을 정리해주고, 반복 작업을 줄여준다. 솔직히, 중간 수준의 지식노동은 상당 부분 대체 가능하다. 이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 된다’와 ‘다 대체된다’는 다른 이야기다.
새벽 3시, 모니터링 대시보드에 빨간불이 켜지고, 로그 파일을 수백 줄씩 뒤지면서 “아, 이건 메모리 누수구나” 하고 직감이 움직이는 그 순간. 경고 알림이 울리고, 고객사에서 전화가 오고, 머릿속에서 장애 복구 시나리오가 동시에 세 개쯤 돌아가는 그 압박감. 현장에서 몸으로 쌓은 지식, 실패를 통해 체득한 그 ‘느낌’—이런 것들은 당장 코드로 대체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차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있다. “AI면 다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 ‘다’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게 무섭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기억은 반복되지 않는다
1차 산업혁명은 근육을 대체했다. 기계가 사람보다 빠르게, 오래, 싸게 일했다. 그리고 지금, AI는 생각을 대체하려 한다. 산업혁명의 네 번째 파도.
매번 기술 혁신은 약속했다.
“잠시 고통스럽겠지만, 결국 모두가 더 잘 살게 될 거다.”
부분적으로 맞았다. 하지만 그 ‘잠시’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직조공 대부분은 새 직업을 얻지 못했다. 역사의 한 줄로 압축된 그들 삶의 수십 년은, 당사자에게는 영원이었다.
구조조정은 시스템에게는 일시적이지만, 개인에게는 영원이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러다이트는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기계를 부숴도 자본은 더 좋은 기계를 만들었다.
200년 후, 우리는 더 정교하고, 더 보이지 않는 기계 앞에 서 있다. 부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나.
적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말해야 한다. “AI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은, “기계는 도구일 뿐"이라고 했던 19세기 공장주의 말과 같다. 도구가 맞다. 하지만 도구가 일자리를 대체할 때, 그건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이 구조적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가치를 재정의해야 한다. AI가 못 하는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만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판단, 맥락을 읽어내는 감각, 실패 속에서 배우는 지혜—이런 것들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직은.
그리고 기록해야 한다. 19세기 직조공의 목소리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기록은 기계를 부순 ‘폭도’라는 프레임뿐이다. 우리는 달라야 한다. 이 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한가운데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직접 남겨야 한다.
망치 대신 펜을
러다이트는 망치를 들었다. 실패했다.
200년 후, 나는 키보드를 두드린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방법은,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내가 겪는 불안. 내가 보는 변화. 내가 느끼는 무력함. 이것을 기록하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저항이다.
200년 전의 직조공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면,
“기계를 부수지 마세요. 대신 당신들 이야기를 적으세요. 그게 더 오래 남으니까.”
IT 업계에서 일하면서, AI를 매일 쓰면서, AI 시대에 불안을 느끼는 한 사람의 생각.